글틴10대 감성쟁이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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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복도식 아파트의 무한성월장원 선정
복도식 아파트 3층 맨 끝에서 두 번째 저희 집에는 선풍기 한 대가 있습니다 에어컨은 없어요 복도식 아파트의 특징 하나는 어쩐지 떨어질까 봐 겁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복도식 아파트의 괴담인지 모를 장난을 치곤 악몽을 웃음으로 겹겹이 포장하는 미소를 짓지 나의 룸메이트는 담력 있는 사람 멀티버스 세계관의 장단점을 구분해 내지 못하고 영원 회귀의 삶을 거뜬히 살아낼 수 있는 중국 쇼핑몰에서 한 달 전에 시킨 택배가 도착했다네 잔뜩 둘러진 뽁뽁이 속 미소 교정기 술 먹고 시킨 것 아니냐며 한참을 웃었다는 괴담 그녀는 중국 쇼핑몰을 믿지 않았다…. 너는 믿음의 연속성이라는 말을 알아? 룸메는 그런 말을 믿는 듯 했다 첫 구매 이벤트에 마음 한편을 내어버린 그녀는 그렇게 어색하게 웃다가 자신이 무엇을 포장하는지도 까먹어버린 사람 장난 같은 사실은 나보다도 그녀가 미소 교정기를 많이 꼈다는 것이었다 (충격) 포브스 선정 첫 구매 이벤트를 가장 많이 하는 한국 회사…에 포장 인력으로 상당 부분 존재하던 그녀는 에어컨을 가장 많이 보내는 사람이었다 할머니 댁 본가 신혼부부 친구의 집 대학교 후배의 자취방 우리는 에어컨 있는 집에서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지 나는 쓸데없는 소모품을 잔뜩 사는 사람 매일 신께서 어지러우실만한 기도를 올렸다 믿음의 가변성을 믿고 싶어 하곤 복도식 아파트의 무한함을 믿기로 했다 복도식 아파트의 끝에는 멀티버스와 영원 회귀의 개념을 평정한 네가 우리를 이어주겠지 선물 상자를 풀어헤친 네가 복도식 아파트 3층 맨 끝 저희 집에는 에어컨 두 대가 있습니다 선풍기 하나도요
작성일 2025-08-31 작성자 dlwjddus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35상세보기 -
시 폴라로이드 입기월장원 선정
동생이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갈 때 문 너머의 골목은 그림이 가득했다 우리가 사는 집은 벽화 마을, 사람들이 그린 벽에는 나를 닮은 동생이 그려져 있고, 아이들 안에서 살았다. 아동 보호 구역을 지나면서, 우리는 속도를 줄여야 한다. 손에서 끌려오는 캐리어 속에, 투명한 내 허물이 동생 얼굴로 굽어있다 나는 태안에서 태어나 태안이라 적혔고, 다 큰 발을 가졌고 동생은, 대한에서 태어나 대한이라 불렸고 커지는 발을 가졌다 우리가 걷고 있는 집에 걸린 우리의 허물들 계단 아래서 조금씩 빨래가 말라가는데 동생이 반대편 벽을 보고 나에게 손자국을 남겼다. 붉은 멍을 내 몸에 묻었다 투명해서 없는 것 같은 나를 닮은 아이의 손 끝으로 벽화 마을은, 사람이 많이 온 데, 관광지고 캐리어를 끌고 아이의 손을 잡으며 걸어가는데. 내가 가는 한 보의 걸음, 동생은 자라고 있는 걸음으로 여러 걸음, 캐리어의 바큇자국에는 우리가 접은 옷들이 있고, 입을 옷들이 있고 이번 여행은 많은 것을 안지 않고, 하나만 안는 것. 허물을 담으며, 그림들을 본다. 아이들만 안은 유아 그림이 담긴 벽을, 내가 만져본다. 보이지 않는 동생도, 유화가 굳은 유아 그림을 만져본다 우리는 서로를 끌고, 웃는 얼굴을 해야지 밖으로 나가 계단을 오르는 일. 아이들은 웃는 얼굴상이라지. 문밖 그림들은 모두 웃고 있다. 서로를 덜 만지고, 속도는 30km 미만으로 자라고. 나는 나를 안아줘야 하는데, 빨리 커버린 동생은 태안 밖으로 나아 간다. 잘린 부분을 품을 수 없는 어린이 보호 구역의 경고 표시로. 우리의 표정이 퇴화한다. 여런 번 덧입힌 태명으로. 벽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를 밟은 나만 있을 뿐 집에 들어와 나를 벗는다 캐리어 속에서 꺼낸 나를 닮은 동생. 우리 몸은 계단 아래서 자라나고 구겨지고 있다. 바람이 몸을 치면서 우리는 서로를 감싼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부는 바람 자국 내 몸에 묻은 오늘의 허물을 누르며 나는 캐리어 속에서 빨고 입지 않은 옷으로 갈아입고 내 허물은 빨래통으로 아무도 모르게 나를 입고 동생은 문밖으로 나가 자랐다
작성일 2025-08-30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16상세보기 -
감성&비평 10대의 시선에서 바라본 학창시절의 노스탤지아 - 박상수 시인의 <후르츠 캔디 버스>를 읽고월장원 선정
평소 학창시절에 대해 생각하면 기쁨과 행복 보다는 후회, 제대로 매듭짓지 못하고 끝나버린 인연, 어리숙했던 첫사랑이 떠오른다. 또한, 남들보다 빛나지 못 한 순간이 내 앞을 가려버린 적이 많아 성인이 되면 이때의 순간을 잊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채웠다. 그러나 이 시집은 우연히 버스에서 만난 인연에 대한 상념, 불안정한 10대의 모습, 청춘의 계절이라 할 수 있는 여름날의 후회등을 거리낌없이 드러낸다. 빛나지 않아도 울적한 날이 달력을 가득 채웠어도 괜찮다는 말을 소녀와 소년의 시선에서 보여준다. 난 항상 누군가에게 빛나는 존재가 되고 싶어도 마음처럼 잘 되진 못 했고 오히려 엇나가는 모습이 대부분이였어서 나를 더욱 옭아맸다. 이 시집을 통해 나와 같은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지난 날의 후회와 추억을 담아서 빌려말할 수 있는 좋은 시집이라고 생각했다. 날려보낼 수도 있지만 휘발성이 강하기도 하고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올 후회라면 조심스레 건네보내는 게 매듭을 짓기 위한 좋은 스텝 중 하나일지도. 본격적인 분석에 들어가기 전, 탐구하고자 하는 바를 밝히겠다. 박상수 시인은 소년과 소녀를 화자로 내세워 이 시집을 총 4부로 나눴다. 각 부에 있는 시들중 1-2편을 골라 분석한 후 제목이 ‘후르츠 캔디 버스’인 이유와 ‘10대의 시선에서 바라본 학창시절의 노스탤지아’에 대해 탐구할 것이다. 또한, 시는 소리를 축적해주는 예술인 음악과 함께라면 더 즐기기 좋다. 이와 어울리는 노래도 몇 번 담아볼 예정이다. 이 시집은 과거 현재 미래 그 어느 곳에 있는 화자인지 정확히는 알기 어렵다. 마치, 아우구스티누스가 했던 말처럼. 따지자면 과거에 더 가까울지도. 학창시절의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우리에게 위로와 행복 또는 물기어린 슬픔을 선물할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어떤 감정이든 소중히 품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시집이 바라는 바가 그런 게 아닐까라는 조심스런 나의 생각이다. 이런 말이 있다. ‘이럼에도 저럼에도 나는 모두를 사랑해!’ 이 시집을 관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섭하다. 작가의 말이 책을 관통한다고 봐도 무방하니까. 먼저, 2006년 2월 구판 속 시인의 말을 보자. ‘괜찮니? 그래, 오늘은 잠깐 너를 보러 온 거야…… 달이 있고 여전히 이곳엔 지구인의 폐기된 기억이 떠다닐 테지만.‘ 시인은 여기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너’에게 말을 건넨다. 뒷 부분을 보면 달, 지구인의 폐기된 기억 … 아마 시인이 말하는 ‘너’는 외계인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버리는 걸 넘어 폐기하고 싶었던 기억 옆에서 부르는 미지의 존재라니. 아무래도 주인공은 무척이나 외로운 상태라고 생각했다. 잠깐 보러온다는 말이 조금 애달팠다. 모두들 이런 경험 한 번 즈음은 있을 것이다. ‘나.. 학원 가야해서
작성일 2025-08-30 작성자 yerbi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56상세보기 -
시 완숙 토마토는 의외로 초록색월장원 선정
사람에게서 사랑을 찾으면 안되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꼬리뼈는 꼬리가 퇴화한 기관 날갯죽지는 무엇이 퇴화했나 구품천사의 운명을 타고난 자들 모두가 이미 알고 있지 땅만 보고 걷지 마렴 나도 하늘 보는 사람이 좋아요 힐끔힐끔 곁눈질로 보는 거 말고 대놓고 하늘이랑 눈 마주치는 거요 토마토가 슈퍼푸드에 선정 갈아 만든 악마의 주스 밖은 아직 칠 월 무성한 초록 사이 토마토 수확 시기 뜨겁게 달궈진 빨간 열매 아직 덜 여문 키위에 상처를 내야 해 그래야 당도가 높아지거든 낫지 않으면요 그럼 어떡해요 그땐 어쩔 수 없는 거란다 구름 위에서 피를 흘리는 기분... 너는 알 수 없는 말만 하는구나 세상을 살아보렴 상처입힌 기억은 언젠가 되돌아오지만 상처입은 이들을 치유해주진 않아 그저 그들이 갈변하지 않고 더욱 단단해지길 바랄 뿐이지 부박한 그 아이에게 날개 잃은 천사에게 상처 입은 과일에게 붕어빵을 건넨다 굿바이, 녹색 눈의 아이야 이 계절의 녹빛을 조금씩 전부 꼭꼭 씹어 삼키렴 자연 경관 주인 없다 해도 네가 가지면 그만 아니겠어 은행잎이 물듦 여름 영원에 가둠 동물원에서 얼룩말이 탈출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상처가 이내 아물고 또다시 자리를 잃어버릴 여름과 푸름 겨울에는 군고구마 사줄게 글 계속 써줘 랑해
작성일 2025-08-27 작성자 마용건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29상세보기 -
수필 언젠간 단단한 마음을 너에게월장원 선정
(글에 들어가기 전 ** 부분은 제목 사진 혹은, 프로필 사진을 참고해 주세요) 지난 2024년 나에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여느 때와 같던, 평범한 연도인 줄 알았는데. 그해 나는 자의와 타의로 인해,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9월에 자퇴했다. 자퇴를 한 계기를 묻는다면, 건강 문제라는 단어로 답하지만, 세세하게 말하지는 못한다. 그 이유는 내 문제가 하나의 사이클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인 문제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나는 2022년도 10월부터 원인 모를 기침을 앓아왔다. 끝없는 기침으로 동네 의원을 밥 먹듯 다녔다. 의사는 그런 나를 보고, 약한 약부터, 독한 약까지, 기침과 관련된 약을 모두 사용했다. 그런 그의 노력에도, 기침은 호전되지 않아, 대학 병원 소아 청소년과 교수들, 정신과 의사까지 만났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진단을 했다. 소아 청소년과 교수 중 한 명은, 천식이라 보고, 다른 한 명은 기관지가 민감한 것, 정신과 의사는 기침 틱으로 내 병명을 진단했다. 그래서 나는 알레르기 약 {싱귤레어}, 기관지 확장제 {심비코트}, 틱 약을 모두 혼합해서 먹었다. 그래서인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기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기관지 한쪽에서 끙끙거리며, 내 생활을 조여왔다. 사실 고등학교 진학 및 졸업은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기침 때문에, 내가 수업을 듣기 힘들뿐더러, 반 친구들에게도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1학기까지는 반 친구들이 아무 말 없이 나를 대해줬다. 나 역시 친구들의 배려에 보답하고 싶어, 더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고, 기침을 최대한 참아 보려고 했다. 하지만, 넘치는 물을 누르면 누를수록 물이 빠지는 게 아닌, 쌓이는 것처럼 기침 역시 해소되지 않고, 내 의식으로 눌려 쌓여갔다. 지난 8월 누르고 있었던 게 터진 걸까? 감기가 들어온 이후부터, 내 기침은 갈비뼈에도 금이 갔던, 2022년의 기침과 비슷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이명, 두통 등 자잘한 잔병들이 나를 학교 밖으로 몰아세웠다. 아무 도 나에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내가 내는 기침 소리 때문에 보이는 눈치가 보였고 이는 나를 조여왔다. 이를 본 담임 교사인 과학 선생님께서 무엇보다 논리적으로 나에게 자퇴를 권유했다. "선생님은 희찬이 한 명의 선생님이 아니니까. 2학년이 돼서도 이렇게 기침이 나오면, 자퇴해야 할 확률이 커질 거야?" 그의 논리에는 빈틈이 없는 듯 보였다. 혹여나, 논리에 빈틈이 있더라도, 그 빈틈 역시 나를 감정적으로 조여왔기에, 빈틈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빈 곳이 없었기에 나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자퇴를 선택하는 방법밖에. 그렇기에 나는 9월 10일 오후, 자퇴 서류에 서명했다. 단지 미안함과 원망 그리고 이해만이 몸을 따라, 학교 밖을 나왔다. 자퇴하고 난 뒤, 9월과 10월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단지 갑자기 속이 뜨거워지고, 기관지가 사람을 만나기를 거부하는 기침만 나 올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시, 소설, 수필,
작성일 2025-08-21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22상세보기 -
소설 초록 안락사월장원 선정
담쟁이덩굴이 된 소월을 시멘트벽 아래에 하나씩 심었다. 총 마흔네 개였다. 손이 금방 붉어졌다. 뼈마디에 찬바람이 스미는 듯했다. 벽 사이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남아있었다. 그런데도 씨앗 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소월은 오 년 전 남편을 잃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오 년 동안 홀로 좁은 방에서 살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좁고 음습한 악취가 풍기는 방이었다. 소월이 그 방에서 초록 안락사법이 있어 다행이라고 할 때, 나는 미치도록 반박하고 싶었다. 일흔다섯이 되면 강제로 식물이 되어 죽어야 하는 법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월처럼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소월은 예쁜 꽃으로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고 했다. 물을 붓자 담쟁이는 빠르게 자라났다. 담쟁이를 눈으로 쫒았다. 밑에서부터 파릇한 잎사귀가 돋았다. 금세 탐스럽게 되어 선명한 녹빛을 띄었다. 잎사귀를 잡아보았다. 보드랍고 면적이 넓었다. 서희의 손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떨렸다. 가슴에 화한 민트 사탕이 떨어진 것 같았다. 소월은 죽기 전에 자기가 어떤 식물이 되던 벽 아래에 심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으로 소월이 원망스러워졌다. 나는 소월의 유일한 친구였다. 나 또한 소월이 유일한 친구였다. 내가 죽으면 날 심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비로소 고개를 들어 낮달을 봤다. 말없이 벽을 오르는 담쟁이를 따라가다 보니 낮달이 보였다. 지난밤 보았던 달보다 더 커다란 반달이었다. 마치 종이를 잘라 물 위에 버려둔 반투명한 종이달 같았다. 곧 녹아 없어질 듯 엷게 빛났다. 시멘트벽은 청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상태였다. 담쟁이덩굴은 페인트 벗겨진 자리를 덮었다. 담쟁이덩굴이 벽 끝에 다다랐다. 소월의 집과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그동안 아스팔트 끝자락에 자라난 민들레가 시체인지 의심했다.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는 나를 포함해 두 명의 노인이 앉아있었다. 오른편 가장 뒷자리에 앉았다. 청색 가죽 시트에 등을 기댔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히터가 세게 틀어져 있던 탓에 공기가 건조했다. 창밖을 보다 보니 길가에 자란 들풀마저 신경 쓰이기 시작하였다. 소월의 집에 다녀온 뒤로 신경이 예민해졌구나 싶었다. 버스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목뒤에 사마귀가 있는 노파가 비니를 푹 눌러썼다. 비니를 쓴 노파는 볼이 파여있었고 자주 기침했다. 멀끔한 남색 양복을 차려입은 노인이 노파의 어깨를 두드렸다. 뒷머리까지 깔끔하게 정리된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남자였다. 노파는 비니를 올리고 노인을 바라봤다. 노인이 품에서 사탕을 꺼냈다. 호박엿이에요. 노파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호박엿을 받았다. 노인이 노파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군청으로 갑니다. 초록 안락사는 죽기 사흘 전부터 신청해야 블랙카드를 받으니까요. 노인은 짧게 탄식했다. 자기도 마찬가지라고 노인이 대답했다. 가족이 있습니까. 노파의 질문에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손녀 한 명이 있습니다. 췌장암 말기인 저를 이 년 동안 살게 해준 고마운 아이입니다. 노파의 눈에는 안광
작성일 2025-08-01 작성자 유성화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16상세보기 -
시 구슬 (퇴고)월장원 선정
구슬 유리에는 층위가 있군 빛이 일렁이거나 사라지거나 환해지는 그것은 장판 위에 놓여 있다 하얀 강아지 이불을 팽개치고 시리게 유리는 주로 하얀색이다 그렇게 말하면 곧 말이 안 되는 걸 알게 된다 구슬을 집어 들자 빛이 나갔다 새로 들어온 빛이 새로운 양식으로 존재하는군 손아귀에서 찰랑거리는 빛의 범람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온다던 사람은 오지 않고 집전화를 들어보지만 생각한다 통신이 어렵던 시절이나 재촉당하는 사람의 불편함을 그 사람의 마지막 편지를 곱씹으면서 기다릴 때 초마다 빛의 색깔과 세기가 달라졌다 그런데 빛은 밖에서 오고 그 사실은 그 사람이 사랑스러운 만큼 영속적이다
작성일 2025-07-26 작성자 사인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52상세보기 -
감성&비평 과거의 망령과 죽음의 골짜기에서 - <고요한 인생의 흐름에서>와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를 중심으로월장원 선정
속 유령을 찾아서 조명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세면대. 세수를 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 중기에게 오래전 망각하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어떤 남자가 강압적으로 묻는다. “○○○ 어딨어?!” 중기는 떨리는 손을 허공에 뻗은 채 세면대를 벗어나 빛이 새어오는 문 틈으로 다가간다. 귓가에 울리던 폭력적인 소리는 더욱 크게 증폭된다. 과거의 소음이 현재를 장악해버린다. 김응수 감독의 1998년 영화 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불혹에 접어든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이 오래간만에 만나 시간을 보내는 내용을 담고있다. 언뜻보기에 애틋하고 향수어린 감각이 묻어있을 것 같은 줄거리이지만, 영화를 보게되면 정작 그런 것들과는 다소 거리가 먼 영화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오히려 위에서 서술한 세면대 장면을 보면 몸서리 처질 정도로 오싹하기까지 하다. 도대체 아름다워야할 이 장면이 이토록 소름돋게 다가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를 살펴 보기 위해 우선 세면대 장면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아야할 듯 싶다. 영화는 80년대 운동권에서 활동했던 학생들의 현재(90년 대)를 다루고 있다. 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한국을 떠나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는데, 중기라는 인물은 군사독재시절 운동권으로서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동료에 대해 자백해버려 그의 죽음에 선험적으로 일조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세면대 장면에서 모습을 드리우는 과거의 소음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잊혀지지 않는 그 죄책감(혹은 시대가 남긴 트라우마)이라는 유령적 존재가 우리의 일상에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대 운동권들이 겪어야했던 ‘물고문'이라는 시대적 폭력의 상흔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장면이 이토록 섬짓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망각하고 있던 과거(를 재현시키는 소음)가 세수를 하려는 일상적인 순간에 불쑥 찾아와 현재를 장악해버렸다는 것에 있다. 요컨데 오랜 시간이 흘러버린 과거는 - 우리의 기억을 통해 왜곡된 생태로 현실에 개입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 그 자체로는 더 이상 현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기에, ‘유령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발생한 영화 속 사건(중기가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자백하는 사건)이 특정 쇼트를 통해 물리적인 이미지로 보여지지 않고, 오직 인물들의 언급, 또는 비명, 목소리 같은 청각(사운드)에 의해 전개되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이 유령적인 존재는 우리에게 물질적인 방식을 통해 직접적으로 다가 올 수 없다. 반면 그것이 간접적으로 우리 현실에 침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과거가 무의식 중에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마치 유령처럼 어느 순간 비물질적으로 우리의 현실에 다가온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적어도 에서 만큼은) 과거가 현재에 소환되면, 현재의 지반을 이루고 있는 무수히 많은 과거의 층위 중 하나가 현재의 표부와 뒤섞이며 현재(의 상태)는 위태롭게 변질되어 버린다. 일상적이었던 것은
작성일 2025-07-14 작성자 화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28상세보기 -
수필 엄마에겐 절대로 보여주지 말 것월장원 선정
엄마, 산문 과제로 ‘내가 삶과 싸우는 방법’을 받았어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삶과 가장 잘 싸우는 사람은 엄마예요. 가끔 정말로 궁금해요. 엄마는 엄마의 삶을 어떻게 견뎌 왔나요? 어떻게 모든 게 지나갈 거라고 믿을 수 있었나요? 저는 아직도 외할아버지가 미워요. 어떻게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한 짓과 내게 하는 태도를 분리해 보라 할 수가 있었나요? 오늘 아침에도 엄마께선 제게 다 지나간다고 말씀 주셨어요. 등에 와닿는 온기는 진짜였지만 지나갈 거라는 말은 믿기 어려웠어요. 꼭 붙잡고 싶은 것들은 저를 통과해 흘러가는데, 필사적으로 피하고 싶은 것들은 제게 콱 박혀 빠지지 않아요. 엄마, 엄마는 어떻게 50년을 살아있을 수 있었나요. 태어난지 20년도 안 되었는데 숨 쉬기가 버거워요. 인생 맛보기가 이렇게 입맛에 안 맞아서 어떡하죠. 유산을 소재로 한 소설을 못 읽겠어요. 글자들을 꾸역꾸역 눈에 바르다가 몇 번이고 책을 덮어 버리고 말았어요. 간명한 글자 속에 담긴 제각각의 이야기들을 쳐다보기가 망설여져요. 제가 가진 고민이 흔하디 흔한 사연일 거라는 것도요. 제가 엄살을 부리는 것 같아요. 시험관 시술 과정에서 잘못된 세포가 흘러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제가 아니라 다른, 좀 더 무던한 아이가 태어났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분명히 그런 경우의 수도 있었을 텐데. 제가 부채감을 가지길 원치 않으신다 하셨지만 계속 떠올라요. 제겐 과분한 환경이 다른 아이에게 돌아갔더라면. 저는 엄마 딸이죠. 시스젠더 여성이고, 이성애자이기도 해요. 또 정말 운이 좋게도, 엄마 아빠께서 경제적 모자람 없이 키워주시죠. 그런데도 엄마, 저는 같은 반 친구들이 뱉은 “게이나 레즈는 다 죽어야 한다.”는 말에 상처받고 “입시 망하면 딸배나 해야지.”라는 친한 친구의 말에 바로 인상을 찡그리지 않으려 애써요.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일에 상처받는 건 잘못인가요. 배부른 고민일까요. 제 삶을 둘러산 세상은 생각보다 더 비정하고 잔혹할 정도로 이기적이에요. 수행평가 내용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연예인 이야기에 열을 올리던 친구들이 아무렇지 않게 혐오 표현을 입에 올릴 때, 저는 회색 늪에 빠진 것만 같아요. 이미 목까지 잠겼어요. 저도 물들었을 거예요. 얼마 전에 유튜브를 보다가 한 정신과 의사의 인터뷰를 봤어요. 강박증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제 자소서 같더라고요. 초등학생 중학생 때부터 절 괴롭히던 생각들이 강박증 탓이래요. 제 잘못이 아니래요. 어쩌면 제가 제 삶을 진절머리난다 생각하게 하는 요소들 대부분이 제 탓이 아닐지 몰라요. 이 생각과 모든 건 제 탓이란 생각이 공존해서 문제지만요. 벨크로 소리와 시계 초침 소리를 괴로워하고 청각과 촉각에 지나치게 민감한 건 HSP로, 자살사고는 우울증으로. 제 문제들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게 좋은 일인지 모르겠어요. 문제는 많고 답은 없는 게 꼭 수학 익힘책 같네요. 엄마, 저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작성일 2025-07-11 작성자 서하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608상세보기 -
소설 파라다이스 시티에 데려다줘*월장원 선정
*Guns N Roses- 죽어버린 밴드의 다큐를 보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 살아나 있었어.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 밴드가 죽은 자리 남은건 나이 먹을 사람들, 아름다울까. 다 가짜야, 가짜. 비틀즈의 자식들이 프로젝트성 밴드를 결성했다. 조지 해리슨의 자식은 보이지 않는다. 자식이 딸밖에 없고 60년대 사람들이나 수요층을 형성할테니 뭐, 그런건가. 오아시스는 재결합 선언 후 칭총을 외쳤다, 리암이 했다지만 그게 뭐, 거기 가족기업이야. 리암은 트럼프-일론 복합체였던 것에는 뚱띠라고 외치지 않는다. 내정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발상은 나올 수 없을 텐데 어떻게 참고 있는건지 몰라. 믹 재거는 죽은 적 없어서 할 말이 없네. 브라이언 존스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 블랙 사바스는 마약과 술에 쩔어도 기적적으로 사망자가 없기 때문에 원년멤버로 투어를 돈다. 일회성 공연이었던가? 디오는 마약도 하지 않았지만 일찍이 죽었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기에는 블랙 사바스가 운이 좋은 것이다.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는 재결합이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 권총자살은 너무 클리셰이지 않은가 싶지만 키스 에머슨은 클리셰가 어울린다. 그리고 위의 인물들은 모두 영미권에 포함된다. 디오만 아니었으면 모두 영국 밴드일 뻔했지. 로큰롤이 죽었다는 상태가 있음에 따라 차트인한 음악에 로큰롤스러운 진행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로큰롤이 부활했다고 떠든다. 로큰롤이 예수냐? 이상하잖아. 로큰롤은 58년 즈음의 비행기 사고로 죽었어. 죽은 상태로 부활과 죽음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면 성흔을 보여주든 탑수술 흔적을 보여주든 “나다” 라는 퍼포먼스로 증명하든 믿지 못할걸?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밴드맨이 있고 사실 노화로 인해서 걸어다니는 영상을 배속한 것이며 그건 아무런 변주도 없이 화면에서 반복되고 있다. 한쪽 끝까지 뛰어갔다가 다음 프레임에 반대쪽 끝으로 돌아가있고 다시 달려오지. 오지 오스본이 박쥐를 뜯어먹고 있지만 이미 익숙해진 이미지이기 때문에 시력에 지장은 없을지 고민하도록 한다. 오스본은 보컬이 구려진 건 아니니까, 진정한 퇴물들, 예를 들어 액슬 로즈, 라스 울리히가 일회성 라이브를 한다면 재밌을 것 같지 않아? 프로젝트 밴드 이름은 옛적의 영광을 최대한의 가치로 포장해 팔아먹기 위해 마스터 오브 어페타이트 정도로 지어질 것이다. 마스터 오브 어페타이트의 라이브를 위해서 라스는 한 달간의 드럼 특훈에 들어간다. 한 달간의 모든 연습을 녹화했지만 클립으로 만들 수 있는 총 분량은 1분 정도이기 때문에 홍보 영상에는 메탈리카의 1989년 토론토 라이브 또는 4집 앨범에서 긁어온 드럼 사운드가 더 자주 사용된다. 액슬은 라이브를 위해서 거의 계약이 성사된 미키 마우스 실사 영화를 엎는다. 그게 더 락스타 다울 것이라고 믿을 것이지만 액슬은 미키 마우스 자체가 락스타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무튼, 이들의 라이브 당일이 다가온다. 인터넷에는 라이브 홍보 게시물이 뜨자마
작성일 2025-07-09 작성자 데카당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15상세보기 -
시 옛 시월장원 선정
내 아이들에게 기차 브레이크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얼마 후면 이 곳에서도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을 해 2호선 그 꽉찬 기차칸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끼어있으면 덜컹거리다가도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고 그럴 때마다 잠이 드는데 내 아이들에게 우리가 나무 한그루 없는 설산을 그토록 좋아했던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것 같은 곧고 굳은 그 설산말이야 숲진드기에 물려서 독일어로 욕을 내뱉는 내 아이에게 키큰 침엽수림을 왜 내가 좋아했는지를 알 수 없는 단어들의 그라피티를 그리고 마르티니에서 브리그로 가는 계곡의 열차를 왜 좋아했는지 말이야 발리스 사람들에게 하이디를 아냐고 물으면 혼날테지만 나는 하이디가 썻던 말을 내 아이에게 가르칠거야 지푸라기 침대가 나무인 척하는 플라스틱 학원 책상보다 나으니까 알프스가 유럽의 지붕이라던데 나는 비행기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무도 없는 텅빈 아파트의 옥상에 올라 여기도 재건축이 되면 옥상 문은 굳게 걸어 잠기겠지 내 아이들에게 과천에서도 롯데타워가 보인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까
작성일 2025-07-09 작성자 기능사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02상세보기 -
소설 뒷면월장원 선정
삼촌이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몹시 슬퍼하셨다. 그해 여름 방학은 시름에 잠긴 아버지를 따라 삼촌의 집으로 향했다. 유족은 떠난 가족의 흔적을 모아 오는 막중한 임무를 띤다고, 칙칙한 옷을 입히던 가정부 아주머니가 그랬다. 그렇게 매년 떠나는 해외여행은 삼촌의 물건을 정리하는 침울한 유품 원정으로 대체되었다. 그곳까지는 차 안에서 질릴 때까지 졸고도 더 있어야 하는 먼 길이었다. 이전에 나를 데리고 방문한 적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정작 삼촌네를 찾아가게 된 날 나는 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버지는 운전대를 잡는 옆태가 이미 독한 슬픔으로 젖어 있어서, 금방이라도 울어 버리겠다 싶은 불안감이 차를 모는 내내 공기를 꽉꽉 눌렀다. 삼촌은 과묵한 남자였다. 행동은 조용하고, 딱딱했고, 기분은 읽히는 법이 없었다. 만사 관심을 두지 않는 무심한 인상이었다. 감정이 굳은 근육으로부터 자유로운지도 의문이었다. 닫힌 채로 메말라 있는 삼촌의 입은 그런 궁금증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눈. 삼촌이 죽은 지금 괜히 무안해지는 감상이지만, 어둠으로 뒤덮인 그 눈에 스치는 순간마다 살갗을 걷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인간의 눈이라면 자연히 서리는 정기가 깊숙이 가라앉아 있었다. 묘한 인간의 표본이라 해도 좋았다. 아버지에게는 그런 삼촌이 참 존경스러운 형이었던 듯했다. 정확히는 이복형이지만, 둘의 관계에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아버지에게 있어 관계의 출발선에 지나지 않았다. 삼촌도 나름 아버지를 아꼈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완전히 이해하기 힘든 아버지 대의 복잡한 가정 형편 속에서도 여태 친분을 유지한 사이였다.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가끔 아버지가 삼촌의 미소를 옅게나마 자아내는 신비를 목격했다. 삼촌은 웃고 있어도 어딘가 쓸쓸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록 떨어져 지내느라 삼촌이 형 노릇을 할 시간이 적었다고는 해도, 아버지에게는 따뜻한 인상을 남긴 일화들이 있을 터였다. 단지 그건 삼촌에 대해 내가 느낄 몫이 아닐 뿐이었다. 그날 오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삼촌의 집에 발을 디뎠다. 도착한 교외의 주택은 정갈하지만 단조로웠다. 주변의 생명이라고는 이파리를 죄다 잃은 비리비리한 나무가 다였고, 정면으로는 일직선 도로가 조용히 펼쳐져 있었다. 스쳐 지나가면서나 보고 말 지루한 풍경, 하얀 몸을 하고 옅은 햇살을 담담하게 받아내는 삼촌의 집은 세상으로부터 은신이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위치 선정이 묘한 삼촌다웠다. 실내로 거침없이 들어서는 아버지를 나는 조심스레 뒤따랐다. 현관문 너머 일자로 곧게 뻗은 복도 끝에는 맨들맨들한 계단이 보였다. 마른 공기가 온 집안에 감돌고 있었다. 정말이지 생활감이 증발한 집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아무래도 계획이 있으셨던 아버지는 거실로 직행했고, 뒷모습을 끔벅끔벅 바라보던 나는 무심코 2층으로 올라갔다. 분업 정신이라도 발동한 걸까. 목적지는 삼촌의 서재였다. 삼촌이 읽은 책이나 사용한 만년필이 있으면 챙기고 싶었다. 서재 안쪽 벽은 창문이 넓게 나 있었고, 계단보다도 맨들맨들한 책상이
작성일 2025-06-30 작성자 지존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821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