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10대 감성쟁이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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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미완의 화폭
끝도 없이 밀려드는 생각 때문인지 마음이 늘 무거운 요즘이다. 머릿속은 온통 조각난 이야기들로 뒤엉켜 있는데,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조차 막막하다. 마음속에 얽힌 실타래를 어떻게든 풀고 싶어서, 오늘은 이 작은 종이 위에 조심스레 나를 펼쳐보려 한다. 비록 뒤죽박죽이더라도, 지금의 나를 가장 솔직하게 담을 수 있는 건 이 글뿐일테니까.며칠 전, 투명하게 번져가는 햇살이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무더운 공기가 한낮의 골목을 감싸고 있었다.나뭇잎들은 여름을 머금은 채 짙은 초록으로 빛나고 있었고,골목을 메우는 아이들의 순수한 웃음소리 사이로 청량한 바람결이 스며들어 한여름의 무더위를 잠시 잊게 했다.모두가 생기 넘치게 살아가는 듯한 계절이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활기찬 풍경 속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는 기분이었다.세상이 온통 뜨겁게 타오르는 이 한가운데에서, 나는 왜 이토록 차가워져 가는 걸까. 여름은 마치 확신을 가진 사람들만이 견뎌낼 수 있는 계절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확신 하나 없이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모두가 앞을 향해 나아가는 계절 속에서, 나만 혼자 뒤처진 듯한 느낌에, 나 자신이 점점 어색해지는 요즘이다.철새들의 무리 속 뒤떨어져 버린 새 한 마리가 무리를 쫓아가지 못한 채 바다로 추락하듯이, 나 또한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 어색함은, 마치 잊고 지냈던 조각들을 스스로 꺼내보게 만드는 힘 같았다.내가 기억하는 나의 순수한 모습과 거울 속에 비치는 지친 나의 모습, 기억과 현실의 괴리감은 자꾸만 과거를 회상하도록 했다. 이러한 과거의 미련조차 버리지 못한 준비되지 않은 나를 세상은 끝없이 앞으로 잡아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성장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내가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바라는지 전혀 모르겠다. 가장 가까워야 할 나라는 존재가 오히려 가장 멀게 느껴지는 지금, 5년 후면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기만 하다. 이런 나인데 어른이 된 후의 나는 나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로서 나를 인정해줄 수 있을까.그 확신이 서지 않아서,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머뭇거리게 된다.그럴수록 나는, 지금의 나를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아직은 낯설고, 여전히 흔들리는 모습이지만, 지금 이 불안하고 유약한 마음도 언젠가는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조각이 되지 않을까 하고. 지금의 혼란이 꼭 잘못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몰라서 고민했던 시간까지 껴안고 가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 아닐까.나는 아직 나를 모르지만, 그래도 매일 나를 마주하며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언젠가는 조금씩 나에게 가까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지금의 나는 준비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 진짜인 나일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해본다.그렇게 나는, 아직 모르는 나를 매일 조금씩 이해해가고 있다.내게 돌아가고 싶을 만큼
작성일 2025-10-02 작성자 설유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1상세보기 -
수필 잡소리라도 뭔가 쓰고 싶다는 열망
무언가 쓰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문학광장에 들어왔는데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이 개최된다기에 얼른 포스터를 흝어 보았다. 간단한 문의를 저장해 놓고 원래의 목적이었던 글쓰기를 수행하려 돌아왔다. 나의 취미는--내 나이 치고는 꽤 특이한 편이지만, 그러나 여기 있는 사람은 모두 가진 취미인--책 읽기와 글쓰기이다. 그리고 글쓰기가 취미가 되기 전이며 책 읽기가 취미가 된 지 한참 지났을 때 생긴 취미인 '구상'이 있다. 글은커녕 글자 쓰기도 싫어했던 내가 어떻게 이야기의 흐름을 깎고 다듬는 일은 좋아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이다.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글자 쓰기가 싫어서 글쓰기를 싫어한다고 착각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요즘은 판타지를 구상하고 있다. 서양 판타지 소설에서 '원소'가 나올 때 거의 항상 4대 원소를 등장시킨다. 참 이상한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 우리 세상에는 90가지가 넘는 원소가 있고, 현재 발견된 인공 원소까지 포함하면 118가지가 있다는 것을. 왜 그러한 사실을 깡그리 무시하는가? 그러한 의문에서 새로 구상 중인 판타지 소설(만화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러스트'의 초안이 나왔다. 태초에 빅뱅이 있었다.
작성일 2025-09-30 작성자 아이오딘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9상세보기 -
수필 여섯 시 삼십칠분의 문장
나는 오늘 나라는 단어가 신물이 나, M이라 칭하려 한다. 변덕 중에 변덕이지만 오직 즐거움을 위한 산물이다. 즐겁지 아니하면 M은 글을 쓰지 않겠다며 선언. 그리하다니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사랑은 따분하다. 무엇에 대해 M은 글을 쓰게 될까. 지금 자판을 싱겁게 두드리는 와중에도 알지 못한다. 적당한 시간 뒤에 이 페이지는 무엇으로 차 있을지 도통 모른다. 아직까지 확실한 건 사랑은 따분하고 지루해서 신물이 난다. 그러니 사랑 이야기는 당연스레 접어둘 것을 기대한다. M에게는 여전히 청춘도 이질감 든다. 이름하여 너무나 예상되는 전개. 기대 없는 스토리. 노트북을 두드리는 소리를 탐구하기보다 따분하다…. 발전이 없을 글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기란, 끔찍한 일이다. 누군가 많이 남겨둔 발자국을 따라 걸어가기란, 편하고 부질없다 말한다. 지금 원하는 바는 투박함. 투박함을 찾아 표류를 거듭해 본다. 과도기란 참으로 불가피해서 끊임없이 찾아오기도 한다. 어느 시기에는 자아도취해서 탐미주의에 빠지거나 나름의 단어를 동원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써낸다. 어려운 한자어로 덕지덕지 감싸 뿅. 하고 내놓는다. 겉은 적당히 맛있어 보이는데요? M은 홀로 속삭이는데 아이고, 속이 썩었다. 약간 상한 것 같다. 하여간 강렬한 글은 유통기한이 짧다. 투박함이 까다로운 이유는 안은 꽉 차야지 원석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너무 매끈하면 똑같대, 그렇지만 내부는 보석이어야지. 일생일대 투박함을 이룩하려고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해지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이리도 어려우니 말이다! 어제는 그제는 현대의 이상이라고 홀로 자찬해도 오늘부터는 아니야.... 잔뜩 질렸다. 이는 M의 글이 너무나 과하다는 것. 사춘기가 지나 중이병이 찾아온 것. 모방은 습작에서 그치도록 하자. 슬퍼하면서도 나아갈 기미를 보인다. 기쁘기만 하면 글을 쓰지 않을 거라며, 어려움이 곧 유쾌함이 된다고 새로움을 찾아간다. J 씨의 눈물 젖은 심상을 M이 감탄한다. 거기서 흘러나오고 싹을 틔운 첫 글은 얕다. 경험이 빠진 감상은 너무나 껍데기라 상당히 구차하다. 짜깁기를 아주 미세하게 나열하면 눈치는 채지 못한다만, 문학의 가치는 추락하는 중. 그러면 M은 속으로 지피티를 떠올린다. 아아, 이러다 열등감도 찾아오겠군. 한탄하며 단말마의 한숨. 창작자 없는 창작의 즐거운 굴레가 돌아간다. 끔찍이 구차함. 아무래도 M 씨, 그것이 싫다! 글이라는 표현은 또 어떤가? 약간은 심심하고 조미가 덜 된 순정. 노튜닝 순정카. 물론 내 드림카는 순정이길 바라지만 글에는 적당한 조미료를 쳐 주고 싶다. 안녕하세요, 글을 쓰는 지구입니다. (M의 필명이다. 글틴에서 지구는 너무 흔해 선점에 실패했다.) 북유럽의 건강한 식단과 같이 약간 간이 덜 된 맛이 느껴진다. 지구에서 작품을 깎는 중입니다. 너무 요상하다. 청국장 같은 맛. 약간은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자기소개를 안 하기로 했다. 나를 아는 것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작품을 보는 것이 메인이니까. M의 꿈은 책을 말하면 알아보는 것. 창작자는 뒷전,
작성일 2025-09-30 작성자 서제화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2상세보기 -
수필 아이의 한 걸음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그러니 이리 온나의 고양이야사나운 발자국이 겁주듯 찾아든 아침 우연히 바닥에 뭉개진 비닐봉지를 맞닥뜨린 행인이 아아 악!비명을 지를 때, 정말이지 비닐봉지가밤사이 웅크려져 죽은 한 마리의 고양이로 보일 때아무렇지 않은 척 피를 닦고 다시저기로 잠잠히 멀어져 갈나의 마음아 제발 이리 온{박소란 中}고양이는 자신을 공격한 사람을 공격하고, 저주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나온 이유는 뭘까? 고양이의 유연함은 과거와 현대의 사람들 모두 신기해한다. 또한 고양잇과 동물 중, 사람들이 야생에서 보면, 두려워하는 호랑이의 영향이 고양이를 신비로운 존재로 만들었다. 그중 몇몇 어른들은 고양이를 현재까지도 '요물'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늘 신비롭고, 날카로운 동물이었으므로. 물론 현재에 들어서 고양이들을 요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과학은 발전했고, 세상은 변해갔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고양이가 요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공격하는 존재로서의 요물이 아닌, 신비롭고, 웅장한 존재로서의 요물이라고.지난, 며칠간 나는 꿈 때문에 잠을 설쳤다. 그런데, 늘 일어나면, 한 가지의 이미지가 눈앞을 아른거렸다. 그건 바로, 2023년도 1월까지 키웠던 반려동물 토리의 모습이었다. 토리는 쉽게 말하는 치즈 냥이였다. 노란색과 흰색 털이 섞여 있고, 눈은 반짝이며 총알 총알 했었는데. 꿈속에서 보았던 고양이의 모습은 내가 알던 토리의 모습과 많이 달랐다. 눈이 풀어져 있었고, 윤기가 많았던 노란색과 흰색 털이 죽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축 처진 털들 사이로, 검은 오일, 때, 먼지 같은 것들이 쌓여 있었다. 마치 할아버지가 운영하고, 그가 살고 있는 정비소에서 구른 듯이. 나는 늘, 그런 토리의 모습을 보고 잠에서 깼다.내가 요즘, 왜 이런 꿈을 꿀까? 꿈에서 토리를 만난 것은 즐거운 일인데 말이다. 아마도, 내가 며칠 전에 초등학교 1학년 동생이 적은, 시 두 편을 읽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나에 소중한 친구 뽀삐 뽀삐는 매일 나를 반겨준다소중한 친구 뽀삐는 나를 안아준다근데 뽀삐를 씻었는데 뽀삐에 털이 다 망가졌다빚으로 빚었더니 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동생 {송희재} 자작 시}-어느 날 어두운 밤 비가 내렸다 그때 쾅! 번개가 내려쳤다난 왜 외톨일까?난 왜 친구가 없을까? 그렇게 생각했다그때 내 옆으로 비가 내렸다 번개가 내 머리에 쾅 내리쳐서 난 기절했다{동생 {송희재} 자작 시}-동생의 시를 처음 봤을 때, 외로움과 회복이라는 정서가 눈에 띄었다. 아이가 이런 감정을 스스로 정제할 힘이 있겠느는 의구심도 들었다. 나는 그에게 먼저 다가가 물어봤다."희재야, 이거 뭘 보고 쓴 거야?""어, 저번에 토리가 씻고 나왔던 모습을 생각했어.""희재야, 토리 많이 보고 싶어?""보고 싶지."그 시가 토리를 생각하며, 쓴 시가 아니길 바랐는데. 내 바람은 언제나 늘, 이런 식으로 빗나갔다. 동생은 담담한 표정으로 단단한 글을 썼고, 누구보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마치 박소란의 시처럼. 그러고 보니, 며칠 전이었다. 동생은 공부하기가 싫었는지, 내 책장
작성일 2025-09-30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1 댓글수 1 조회수 99상세보기 -
수필 동화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이 참 어리석다. 운명이라는 무심함 아래에서 사랑을 모르고 커야만 하는 아이가 있다. 같은 레일을 달렸을 뿐인데 우리의 50m는 시차를 갖는다. 누군가의 12시간은 누군가의 1분과 같다. 살아온 제각기 다른 삶이 조용히 어둠에 덮인다. 이유는 핑계로 발음된다. 지구에서는 사계절조차 당연하지 않다. 지구의 끝자락에선 겨울에 영원할 것만 같다. 씨앗이 얼까 버벅거리며 흙 위에 손을 포갠다. 가진 따뜻함을 전부 퍼붓는다. 기적처럼 올, 새하얀 겨울의 끝을 얼어가는 손 끝으로 그려낸다. 동화의 존재 이유에 대해 자주 의구심을 품는다. 추잡스러운 세상을 숨기고 싶은 부모의 애정일까. 동화에서만이라도 권선징악이란 단어를 소멸시키기 싫었던 어느 작가의 절박함일까. 아직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현실은 동화의 여집합인 것만 같다. 동화에서의 선과 현실에서의 선은 다르다. 올바른 마음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선은 먼저 선자다. 그런 선을 강조하는 사회는 삶을 보챈다. 보채고 보채서 달리면 어느덧 죽음의 문턱에 서야만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인생은 혼자다 같은 말들을 추임새처럼 내뱉는 나를 본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됐을 삶을 연민하다가 슬픔이 낭비처럼 느껴지는 현실이 어렵기만 하다. 슬픔을 나누면 슬픔이 둘이 된다는 말에, 우는 법을 잊는다. 삶은 우는 법도, 웃는 법도 잊는 일인 것만 같다. 아름답기만 한 사랑이 있을까. 소망하면 이루어지는 꿈이 얼마큼일까.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건 얼마나 희박할까. 불순물 없는 응원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런 숨이 막히는 세상에서 동화를 생각한다. 조금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든다. 잠시라도 꿈을 꾸기를 바란 걸까. 그 꿈이 깨질 때 어린 손에 박힐 유리 조각을 간과한 걸까. 투명한 세상에 찢긴 살갗에 검붉은 슬픔이 차오른다. 이때 왕자님이, 마법사가, 그런 기적이 등장하던데. 되려 삶의 조각 위로 엎어져 온몸에 핏발이 서린다. 대상 없는 원망이 해묵은 슬픔이란 딱지를 만든다.동화는 누군가의 위시리스트였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시대처럼 다가올 아침을 향한 빼곡한 희망 사항들, 모아둔 마지막 순수였을지도 모른다.
작성일 2025-09-30 작성자 매화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0상세보기 -
수필 글을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글을 쓴다는 것. 이것은 어쩌면 ‘글을 읽는다’에 ‘더, 잘’ 어쩌면 ‘기쁘게’ 등과 같은 긍정의 부사들을 덧붙이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다시말해 ‘글을 쓴다’는 것은 ‘글을 더 잘 읽어내고 싶다’라는 말과 동일시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모든 글을 읽는 이가 글을 쓰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글을 쓰는 이는 글을 읽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글이 너무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기에 그 글이라는 것을 놓을 수가 없어서, 사랑하게 되서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읽어내길 원하게 되어 글을 쓰는 것이라고 그리 생각해봅니다.하루는 한 친구가 제게 ‘나는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글을 쓰는 건 좋아해.’하고 말했습니다.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않고 저는 그저 옅게 미소를 띠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친구가 제게 말한 서술어 ‘쓰다’는 ‘일기’ 등과 같은, 자신을 표현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글을 목적어로 가질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자, 표현하고자 글을 쓰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그의 글은 속되게 표현하자면 ‘배설’에 해당하는 글일것입니다.글은 ‘배설’과 ‘문학’으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또 배설은 그 안에서 자신이 적게라도 읽어봤던 책의 질과 양에 따라, 다른 예술을 접해봤던 것 등과 같은 경험들에 따라 세부적인 단계가 나뉠 것입니다. 이는 ‘문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바와 표현해내는 정도 등에 따라 세부적인 단계가 나뉠 것입니다.‘글을 읽지않고 글을 쓰는 이들’은 배설 단계에서 문학 단계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다시말해 아까말한 그 친구의 글은 문학의 형태를 띠지는 않겠죠.글을 쓴다는 행위를 보편화시킨다면 아마 제가 말한 것으로 정의 내릴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그렇다면 조금 더 개인적인 범주로 나아가 보겠습니다. 저는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으로 말입니다. 저는 글을 사랑합니다. 특히 문학은 저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어줍니다. [토지]. [김약국의 딸들], [표류도] 등을 쓰신 박경리 선생님. [엄마의 말뚝], [나목],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 등을 쓰신 박완서 선생님. 제가 어린시절부터 한국문학을 사랑하게 만들어주신 가장 많은 영향을 주신 두 분이실것 같습니다. 그 밖에도 한강, 조정래, 정지용, 백석, 염상섭 등과 같은 한국의 문인들 덕에 저는 끊임없이 한국문학을 읽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읽다가 웃고, 울고, 상심했다 희망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다 사색하고 사랑하고 살아가며 지금의 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그렇기에 제게 글을 쓴다는 것은 저의 삶을 부정하지 않는 것, 나를 내가 왜곡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삶을 훼손하는 자들 때문에 삶을 혐오하게 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다.’‘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라는 소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제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구절이기도 합니다. 제가 글을 쓰며 가장 많이 생각하는 구절들 중에 하나이기도
작성일 2025-09-30 작성자 노도현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113상세보기 -
수필 시간은 금이 아니다
시간은 금이 아닌 이유가 궁금한가? 간단하다. 금은 질량에 의해 그 가치가 결정된다. 1돈의 금을 반으로 쪼개면 1돈의 절반만큼의 가치를 가지게 되는 식이다. 시간은 그렇게 쪼갤 수 없다. 시간은 쪼갤수록 가치가 떨어진다. "하루에 30분씩만 낭비해도 인생 동안 무려 며칠씩이나 낭비한 것이 된다"는 말의 의도는 분명 쓸모없이 흘려 보내는 시간에 대한 경각심을 부여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우리 인생에서 며칠이란 얼마나 짧은 시간인가 하고 딴길로 새어 버린다. 당신이 하루에 30분씩 낭비하던 것을 멈추면 그것을 모을 수 있는가? 시간을 저축할 수 있는가? 시간은 금이 아니다. 다이아몬드 같은 것이다. 다이아몬드도 가치 있는 것이지만, 그 모양과 상태에 따라서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30캐럿 다이아의 가치가 1캐럿 다이아 30개의 가치와 같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미 쪼개어진 다이아몬드는 이어 붙이기 어렵다. 그러니 자투리 시간은 마음껏 딴짓하는 데 사용하기로 하자. 그거 아깝다고 쉬는 시간을 줄이면 남은 시간도 깎아먹을 수 있다.
작성일 2025-09-29 작성자 아이오딘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5상세보기 -
수필 춤이라 오해받는 것에 대하여
"술 같은 건 마시지 않을 거예요. 정말요. 그저 춤을 추고 싶어요." 나는 그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하고 술집 앞을 쭈뼛쭈뼛 서성이다 집으로 돌아와 맥주를 깠다. 아무래도 펠트슐뢰센은 레몬 맛 무알콜을 왜 내놓는지 모르겠다니까 하며 화제를 돌려봐도 곧 다시 내가 춤이라고 어영부영 돌려 말하려 했던 그, 그 무언가로 돌아온다. 그것을 언어로 옮기기는 싫다. 아니, 언어로 옮기려 하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오만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봤던 그 인상 속에 담겨 있는 걸로 만족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것을 원한다. 너무 멜랑콜리해서 죽어버릴 지경이다. 이 지루한 나라는. 생각해 보자면 그것을 춤이라 부르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기만적이다. 춤은 그 의미 자체로 정격적이고 억압적이다. 배워서 추는 춤이란 의미에서 말이다. 또한 수많은 문학주의자들(나를 포함하여- 또한 나는 그들을 경멸한다)이 미학이란 걸 만들어놓고 그것을 적용하려 한다는 점에서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그것은 절대로 춤이 될 수 없다. 그런 사상의 연장에서 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춤을 극도로 (심지어는 유치하고 멍청하게 보일 정도로) 혐오했고, 또 그에 맞서 나름 시위까지 벌였다(학교 행사에 댄스 동아리가 공연이라도 나오면 후드를 깊숙이 뒤집어쓰고 돌아앉은 채 끝나기까지 기다렸었다. 이유야 붙이기 나름이겠지만은 그저 그러한 미학이 띄는 우매한 대중성이 역겹다고까지 생각했었던 것 같다. 지금 보면 내로남불이지만서도 말이다). 그러나 나 또한 육체적 정숙성에서 탈선했는데, 그것은 1년 전 지금 수학여행 마지막 날의 일이었다. 그때 우리 학년이 간 곳은 발리스 칸톤의 베흐비에라는 곳이었는데, 우리의 숙소는 지하에 파티장이랄까, 아무튼 파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자세히는 다루지 않겠다. 기억도 자세히 나지 않는다. 나는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가장 깊이 인상에 남았던 각편은 내가 그간 받았던 스트레스를 연관하려 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타아에 대해 단정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것은 스트레스나 우울에피소드 같은 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었다. 애초에 그것은 춤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무아지경도 아니었고,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같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더 본능적이고 강렬하며, 이질적인 것이었는데, 다소간의 과장을 보태어 그것을 하기 위해 태어난 기분이었다. 절대 기쁘거나 황홀하거나 한 감정은 아니었지만, 한번 시작한 이상 끝낼 수 없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어느 정도는 인간으로 하여금 의존성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또한 더 덧붙여 둘 것은, 내가 춘 것은 자주 보이는 리듬 타기 같은 게 아니라, 말하자면 카자크 춤과 수피즘의 혼합이었다). 여하튼 간의 지하 당구대와 탁구대가 붙어있는 스위스식의 옛 된 콘크리트 지하실에 붙어있던 목제 파티룸에서 근 2시간 정도 춤을 추다가 그날 밤에 곧바로 종아리에 쥐가 났다. 전혀 후회스럽지 않았다. 춤을 추면 쥐가 나야 한다. 쥐가 난 것은 춤을 춘 두 번째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날은 처음 춤을 춘 날
작성일 2025-09-29 작성자 기능사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4상세보기 -
수필 기한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오랜만에 오락실이 가고 싶다. 평소엔 시간이 남아돌아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오락실이지만 기이하게도 길가에 세워져 있는 게임기가 내 눈길을 끈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망부석처럼 게임기를 바라보는데 고모부 생각이 난다. 웬 고모부냐 할 수 있겠지만, 거기엔 다 이유가 있다.1년도 더 전이었다.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1달간 집 밖에서 살게 되었다. 그때 생각 났던 게 얼마 전 결혼을 한 고모님 댁이었다. 마침 거리도 머니 잠시 몸을 의탁하기 위에 부산에서 광양으로 갔다. 무거운 가방에 생필품을 두둑이 들고온 나를 보며 고모와 고모부는 환하게 맞이해주었다. 제대로 고모부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가득은 아니지만, 몸 군데군데 있던 문신, 발목에 있던 흉터, 건장한 덩치까지. 소심하던 나에게 먼저 말 걸고 다가가기엔 조금은 무서운 사람이었다. 아침을 거르고 도착한 나에게 고모는 명란젓을 구워주었다. 명란젓을 구워먹는건 처음이었기에 호기심을 가득 안고 먹었다. 잘 익어 퍼석한 겉과 달리 아직 수분을 머금은 촉촉한 속, 그리고 슬그머니 치고 올라오는 젓갈 특유의 짠내. 밥그릇을 비우던 중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구운 명란젓이 고모부와 닮은 것 같다고. 겉으론 무서워 보였지만 식사 중간 간간이 하는 농담 따먹기와 고모에게 구박받는 모습은 참 인간적이고 다정한 사람이라 느끼게 했다. 그날 오후, 거실 구석에 있던 게임기를 발견해 고모님께 물으니 고모부의 취미라 했다. 평소에 친구들과 플스로 철권을 하던 나에게 구식 게임기는 익숙한 새로움과 반가움을 불러일으켰다. 마침 방에서 나오던 고모부께서 같이하자 제안을 하셔서 잽싸게 응했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해댔다. 우리 둘의 대결은 고모님께서 말리고서야 끝났다. 분명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서산과 입을 맞추고 있었다. 결과는 나의 완패. 어쩌다 한 판 이겨도 다음 판 바로 내리 두 번 졌을 만큼 차이가 심했다. 타오르는 승부욕에 다음에도 같이 하자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조용히 우물거리는 선에서 끝냈다. 아직 먼저 말을 걸며 제안하기엔 조금 수줍었던 나였다.그 다음해 사월 초파일, 할머니의 주도로 청도 보림사에 가게 되었다. 다시 본 고모와 고모부 사이엔 돌도 채 지나지 않은 딸이 함께 있었다. 3시간에 긴 이동 끝에 도착한 절은 익숙한 상쾌함이 가득했다. 향긋한 풀 내음과 은은한 향냄새가 풍겨오는 그곳은 5년 넘게 보았던 그대로였다. 다만 북적거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각종 화음이 더해졌다는 사소한 차이도 있었다. 법회를 시작하자 나는 자연스레 고모부 옆에 앉았다. 아무 말 없이 불상을 바라보던 우리의 눈엔 비슷한 감정을 띄고 있었던 것 같다. 불공을 드리기도 잠시 허기진 난 식당으로 내려갔다. 메뉴는 비빔밥. 흔히들 말하는 익숙한 맛으로 이루어진 식사. 언제 먹어도 같은 맛이 나는 음식이다. 이제는 거리낌 없이 시답잖은 농담이나 주고받을 정도가 된 고모부처럼. 모든 걸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스쳐 가는 산업단지를 보며 가출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 나는 철권에 관해 이야기
작성일 2025-09-29 작성자 최준혁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66상세보기 -
수필 마라톤을 뒹굴며 하는 사람이 있다고요
생명과 죽음이 맞닿아있단다. 생각보다 한순간의 차이라서 아등바등 엄청난 인생을 원하지만 죽음은 생각보다 코앞이다. 점점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시간을 채집하게 된다. 남은 사람들은 아프고 떠난 이는 그 무엇도 모르는 신비롭고 아쉬운 것. 나는 죽음이 아쉽고, 그래서 사람들은 희망을 건다. 매번 앞을, 더욱 앞을 보려다간 뚝 떨어진다. 낙사하기 딱 좋다. 그런 생각을 가진 나는 안경을 자주 끼지 않는다. 떨어져 죽기 무서운 사람이 시력을 포기하는 이유, 얼마나 대단하길래. 안경사가 들으면 이마를 칠 테지만 ... 사람들이 눈이 좋으세요? 만나면 매번 묻는다. 그럼 본인 왈, 저 난시 근시 세트예요. 그럼 분명 또 묻는다. 왜 안 쓰세요? 안 보이지 않으세요? 필자의 말은 ' 보이는 만큼만 봐도 충분해서요 ~ ' 과장 아닌 진실이다. 질주하다 예기치 못한 순간 헛디뎌 경주를 끝마치는 불상사가 싫어서... 나는 눈으로 천천히 시대를 맞이한다. 앞을 꼼꼼히 살피며 흘러가는 시간을 질질 붙잡아 본다. 죽음 이후처럼 그 시간이 더는 안 오길래 섭섭한 바람을 담은 욕심. 욕심만 그득 담는 중에 저번달 주변의 생명이 하나 꺼트려진다. 이를 눈으로 목도하여 더욱 다짐했다. 후회하지 않을 아름다운 하루를 살아가자. 한 단계 변태한 순간이었다. 어떤 노력이라도 보람찬 행복을 품도록. 결국 잃어도 가장 슬픈 관계는 가족이었다. 미워도 고와도 후회가 터져 나오는 사이라, 농이 아니다. 매일을 행복하려고 감동적이게 연출하자, 그러면 감동이 나름의 방식으로 오더라. 후회 마이너스 일.하루는 엉망진창이라도 제멋대로 뒹굴려 가고 있고 놓친 김에 다음 버스를 기다린다. 정처 없이 휘몰아치는 목표의 소용돌이. 나도 모르지만 끝을 향하는 지름길. 숏츠를 접어두고 창밖을 보면 ...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네. 세상은 이미 조금 바뀌었다. 생명 마이너스 일. 시간이 흐른다. 손쓸 새 없이 흘려버렸다. 시간이 돈보다 소중하다는 말이 빛 좋은 개살구같이 들리는 시대상. 어쩌면 틀린 말이 아닐지도. 속상한 일이다... 웬수, 홀로 개탄을 늘어놓는다.열정 페이로 나의 힘과 활력, 시간을 바침으로 뿌듯함을 얻는다면 그것은 좋은 일. 그런데 정신 차리니 지금 얼마를 바쳤는가? 아이고, 타임 누수 발생. 앞으로 활력이 얼마나 기다려줄지 미지수임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늙고 남은 그대로란 말이다. (이 대목을 쓰며 다분히 슬펐다. 배가 부른 청소년의 말이지만 이 마저도 아쉬움이 가득했다.) 나야 죽음 게이지가 차올라도 바깥은 생기가 흘러넘치는 듯해 드디어 이제는 노후를 즐기고 싶어진다. 백발이 면류관이 되어 알아주면 좋으련만, 스스로 준비하는 끝... 섭섭하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화양연화의 시기를 노름쟁이로 보내는 것은 더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저 너머를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나는 십 대의 시기를 보내는 중이다. 십 대는 너무 가냘프고 보물 같은 존재라. 나는 후반이다만 더는 허투루 쓰기가 싫었다 보다. 물론 순진무구하고 행복하게 친구와 농담 따먹기를 하며 지내는 것도
작성일 2025-09-29 작성자 서제화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91상세보기 -
수필 나에게
오늘은 아주 길고 긴 나의 이야기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겪었던 거에 비하면 매우 짧고 요약된 이야기이겠지만 오늘의 주제는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가이다.초등학생 때에는 그저 천진난만하고 시끄럽던 어린아이였다.하지만 그때에도 분명히 나와 맞지 않거나 다른 아이들도 있었다.하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가 벌어졌다.초등학교 졸업식이 끝나고 추웠던 겨울,나는 중학교 배정을 확인했다.확인하자마자 눈을 의심했다.우리 학년이 150명이 넘었는데 고작 10명이 튕겼는데 그게 나였던 것이다.엄마는 잘못 확인한 거 아니냐고 이게 맞냐고 난리였다.그래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 뭐 적응하면 되는 거지 싶었다.(코로나가 거의 끝나고 아직 여파가 남아있을 적이라 더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중학교 1학년의 배정은 괜찮았다.아이들은 아직 순수했고 착했다. 그때 처음 만났다.유난히 다른 친구들보다 머리가 빨갰고 조용했던 아이나는 지나가는 애들한테 다 인사하고 다니는 시끄러운 아이였고 그 애한테도 말을 쉬이 걸었다.우연히 같은 관심사와 같은 취향을 가졌던 우리는 금방 친해졌고 그렇게 1년이 매우 금방 지나갔다.(이 친구를 A라 할까요)중2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던가 진짜 그랬다 그것도 아주 많이.중학년 1학년때 친해졌던 무리가 흩어지고 그 애와 나만 같은 반이 되었다.그때 첫인상은 꽤 귀여웠던 아이를 봤다. 하지만 뭔가 묘했다.그래서 그런가 이번엔 먼저 말을 걸진 않았다.그런데 어찌어찌 내 베프와 친해져 있었고 나는 뭔가 어색했지만 그래도 괜찮지 싶어 같이 다녔다.학기 초반까지는 학교를 잘 나왔던 것 같다. 그 애 집에도 놀러 가고 같이 쿠키를 만들기도 하고, 노래방도 가고, 사진도 찍었다.근데 보였다.뭔가 A가 물들어간다는 게 보였다.감정은 전이된다고 했던가, 비슷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찾아왔다.얼핏 알고 있었다. 그 더웠던 열대야에 반팔에 토시와 긴바지.웬만하면 시도조차 않을 더워 보이던 옷들.숨기기에 급급해 보였던 가끔 보이던 당황한 표정.솔직히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두었다. 내가 말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걸 알았고, 참견은 좋은 게 아니니까.그러다 아 나도 물들고 있구나 느꼈다.하지만 숨겼다. 나의 아픔을 얘기했다가는 다 무너져 내리겠구나 싶었다.어느 날 발견했다. 내 베프가 말하더라 한번 해봤다고 종아리에그걸 봤다 세게 그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오래가던 흉터였던 것 같다.순수히 일자로 그어진 한치오차 없는 여러 선그걸 보고 다짐했다. 아 신경 써야겠네 더 빠지면 못 나온다 위험하다.위기감이 갑자기 나를 덮쳤다.그걸 말하고 난 후 내 베프와 그 애는 이제는 다 말해도 된다는 마음을 먹은 건지 하나하나그것도 자신의 치부가 아닌 서로의 잘못된 점, 잔소리 들어야 하는 그런 점들을나에게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다.아직도 기억나던걸 몇 가지 말해보자면둘이 같이 베프의 아파트 옥상에 같이 올라가 봤다던가,본인이 자해한 흉터와 피를 트위터에 게시한다던가 그런 것들이었다.진짜 충격이었던 건 그 자해가 그냥 일자로 긋는 게 아니었다는 점이랄까.
작성일 2025-09-29 작성자 윤도위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72상세보기 -
수필 희망의 부재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사람은 대개 미련한 생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그 생각을 부풀린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 생각이 미련한 생각임을 명확이 알 수 없다. 아니, 사실 조금은 알 수 있어도 빠져나올 수 없다. 발에 족쇄라도 찬 것처럼, 수중에서 빠져나오기란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진다. 오늘의 내가 그렇다. 2025-09-26일의 내가.“선생님이 봤을 땐 이 전공 입시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아. 너 이거 정말 목숨걸정도로 하고 싶어?”그 말에 깊이 담아뒀던 먹(墨)이 심중에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항상 떠오르려 했지만 아파서 일부러 깊이 담아뒀던, 그 먹물이 오늘 결국 새어 나오고야 만 것이다. 너무나 예리해 아픈 질문이었다.‘목숨을 걸 정도로 좋아하나..?’내 목숨값을 비싸다고 생각하진 않았기에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생각이 들긴 하였으나 아마 그만큼 간절하냐는 질문이었을 것이다.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확실히 단정 짓기엔 마음이 애매했고 아니라 말하기엔 내가 원하는 답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무서웠기 때문이다.나는 사실 그 정도의 간절함을 가질 정도로 좋아하는 분야는 없다. 다 그렇게 살아가는지, 나는 잘 모르겠으나 내 인생 과거엔 늘 간절히 원하는 분야와 꿈이 있었다. 그랬기에 항상 쉴 틈 없이 노력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았다. 그랬던 내가 한순간에 꿈과 좋아하는 것을 잃었으니, 나아갈 방향과 갈피를 전혀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항상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나는 누군가를 보며 열등감을 느끼고, 자책하는 일이 허다해졌다. 열심히 살았던 게 맞았는지 의심을 하고, 절대 안 할 것 같던 운을 탓해보기도 하였다.남 못지않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 시간이 쌓임과 동시에 문제와 힘듦이 같이 쌓여오는 듯 느껴졌다. 앞으로도 쭉 무게만 쌓여갈 뿐 일 것 같은 생각에 미래의 희망을 끌 수밖에 없었다.1시간.. 2시간.. 그 하루의 수명이 줄어갈수록 부정적인 생각은 겹겹이 쌓여 무게가 늘어나고 있었다. 내 수명이 줄어들고 있음을 체감하는 듯, 해결책이 아닌 문제의 원인조차 지우려 시도했다.몇 개월 전 먹다 남은 한잔 양의 블랙라벨 한 병과 지금 내 심정과 어울리는 선율, 그리고 얼마 사용하지 않은 예리한 커터칼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왼쪽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가지런히 풀어 올려두었다. 이 행동은 단순히 순간의 충동이었는가. 아니면 이 상황마저도 항상 심중 깊이 묻어두었나.내 삶의 방식이 처음부터 틀린 방식이었던 것 같이 느껴졌다. 처음 꾼 꿈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객기로 모든 것을 쏟아붓지 않았더라면, 친구의 연락보다 나를 더 챙겼더라면.. 그랬다면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드르륵..” 마침내 커터칼 한 칸을 뽑았다. 요동치는 마음보단 이미 모든 걸 체념한 듯 고요한 마음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시계를 푼 왼쪽 손목의 핏줄을 찾았다. ‘나는 어떻게 존재해야 했을까.’예리하고도 차가운 칼끝이 손목에 닿을 때, 갈기갈기 찢겨 쳐져있던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모든 걸 놓을 거라던 혼잣말을 뱉으면서도 쉽사리 행동에 옮기
작성일 2025-09-28 작성자 안강준 좋아요 0 댓글수 2 조회수 95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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